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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3. 23世 〉18. <부정공>우죽당공휘휴방묘갈명(友竹堂公諱休邦墓碣銘)
1. 문헌 목록 〉23. 23世 〉20. <부정공>학생공휘석우묘표(學生公諱晳祐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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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부정공>만운공휘상노가장(晩雲公諱相魯家狀)
晩雲公諱相魯家狀 吾玉川趙氏之先自高麗檢校大將軍諱璋始爲東方著姓至玉川府院君忠獻公諱元吉前副正虔谷先生諱瑜忠勳懿德道學節義焜燿百世國家旌褒士林爼豆贈兵曹判書節愍公諱崇文敎官公諱哲山 端廟丙子同日駢命之忠節雲山郡守諱夏亨牧民徽續具載於六代祖考晩悟公狀文中略爲叙次高祖諱鎭豊承政院左承旨曾祖諱邦浩通政大夫同知義禁府事祖諱光鉉號錦堂通訓大夫同知中樞府事考諱源永號嵋西隱德不仕妣慶州鄭氏永桂其考也誠孝備摯舅姑曰孝婦鄉隣稱賢婦矣府君諱相魯字一三號晩雲 高宗辛丑七月三十日生而異凡性度寬溫才質淸粹體幹凝重動止安詳儕輩或有非違者輒諷刺而化之焉見者咸稱幼若成人將爲大用之器也稍長聘師設敎自知用力尋思熱讀理會無疑改讀他書不爲涉獵見聞日博知行日進矣王考同中樞公辟咡詔之曰人家父子間愛逾於敬不施嚴敎石潭法門之罪人也甲申戒飭曰吾家之昌大亶在乎汝之誠勤讀書也勿負乃祖區區之顒望用光先世綿綿之緒業焉府君懷以無恤之簡朝焉夕焉孜孜勤勤藝業日新儕流莫不稱其莫及也與弟友愛尤篤食同案學同硏物我無間迭唱埍箎晨昏定省之暇輪誦斯干時藹然和氣盈溢于家也素是南畝之家間遭歲饑上下衣食及吉凶之資恐或有缺牢定三餘之計樵山鋤圃服勤無方王考偏嗜江鱗故出獵而供盤忌日雖在隆冬剖氷必求而助奠鄉黨感歎曰古之王祥今復在云矣甲戌九月二十八日淹遭弟喪撫尸哀哭曰重重省下是何慘變家運耶命途耶悠悠蒼天胡乃降之其厚奪之斯速使致吾家之漠漠耶以若吾弟仁愛之德遞至於此天難諶斯秀而不實正謂此也欲慰重堂及兩親強加食飲送死諸節少不致憾撫育孤姪男妹若己出而敎篤義方也不勝終鮮之痛癖於醉往墓洩哀隨處放吟痛冤成病積年沈痼不省誠蔑禱藥無效悶皇萬切矣丁亥五月症遂添重十二日夜半倚枕命不省喟歎曰難可支吾兩親未克終養汝之夫子未能成立今忽至此命也奈何我雖逝也養生事死克盡誠孝至若產業亦爲勤儉做成勿負此臨終之遺戒則九原之目庶將瞑也又吿從昆季及諸姪輩曰我今年未免夭有子有孫別無所憾其奈不孝不慈何涕隨言零奄忽屬纊十三日巳時也享年四十七遠近痛惜其壽不稱德矣未免燮喪旋葬于住嚴面金谷村白虎嶝先塋下未坐原爲不省罔極之痛恨也孺人海平尹氏考諱致珍東岡殷弼后妣咸陽朴春鉉女也 高宗庚子六月十日生端莊貞淑城崩後自處未亡人衣食行素奉祭必誠敎子必嚴克昌吾家之德行不讓乎古之孝烈婦也生四男二女長曰亮勳即不肖次曰泰勳商勳東勳一女濟州梁東椿二女光山金熙洙孫男成翼珣翼中翼亮勳出光翼泰勳出餘幼不盡錄鳴呼府君十室之忠臣一鄉之君子人也居家而篤孝友處鄉而扶倫綱冠婚遵禮喪祭盡誠信以交友愛以接物承先啓後以振家聲可範鄉俗也胡爲乎年不稱德德不輔世竟沒於草野而止耶痛迫私情天壤無窮也不省窃恐世降日遠見泯如此實德茂行故謹述過庭見聞之萬一伏惟立言君子采擇而發揮之至千萬泣血冀懇 不肖孤 亮勳 泣血謹狀 만운공휘상노가장(晩雲公諱相魯家狀) 우리 옥천 조씨의 선대는 고려 검교대장군 휘 장(璋)을 상조로 비조로 동방에 저명한 성씨가 되어 옥천 부원군 충헌공 휘 원길(元吉) 전부 정 건곡선생 휘 유(瑜)의 충훈의 덕과 도학 절의는 백세에 환히 빛나, 나라에서 정포하고 사림이 석채 하였으며, 증병조판서 절민공 휘 숭문(崇文) 교관공 휘 철산(哲山)은 세조(世祖) 병자(一四五六)년에 같은 날 목숨을 버린 충절과 운산군수 휘 하형(夏亨)의 백성을 다스린 아름다운 행적은 六대조고 만오공 장문중에 갖추어 실렸으므로 대략 서차하였다. 고조 휘 진풍(鎭豊)은 승정원 좌승지요, 증조 휘 방호(邦浩)는 통정대부 동지 의금부사며, 조 휘 광현(光鉉) 호 금당은 통훈대부 동지 중추부사고 고의 휘는 원영(源永) 이요, 호는 미서인데 덕을 숨기고 벼슬 아니 하였으며, 비는 경주 정씨(慶州鄭氏) 영계(永桂)의 따님으로 성효가 지극하니 시부모가 효부라 칭도하고 향방은 현부인이라 칭송하였다. 부군의 휘는 상노(相魯) 자는 일삼(一三) 호는 만운인데, 고종(高宗) 신축(一九○一)년 七月 三十日에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보통 사람보다 다른데가 있어 성품과 도량은 너그럽고 온후하며, 재주와 성질이 맑고 순수하며 체격이 엄숙하고 묵중하며, 행동거지가 편안하고, 자상하여 동료가 혹 비위가 있으면 문득 비유로 결점을 찔러 교화하니 보는 사람마다 어린 사람이 성인 같으니, 장차 크게 쓰일 사람이 되겠다고 칭찬하였다. 조금 장성함에 스승을 맞이하여 가르치니, 스스로 힘쓸줄 알고 깊이 생각하고 익히 읽으며, 의심없이 해득한 후에 다른 글을 읽었으며, 그냥 건너뛰는 일이 없으니 견문이 날로 넓어지고 지식과 행동이 날로 진취하니, 왕고 동중추공이 입아귀로 불러 훈계하되 인가 부자간에 사랑이 공경을 넘어 엄하게 가르치지 아니하면 석담법문(石潭法文)의 죄인이다. 조부의 구구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고 선세에서 계승한 선업을 빛내라 하시니, 부군이 무휼의 서간처럼 간직하고서 조석으로 근고하여 학업이 날로 새로우니 동료들이 미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아우로 더불어 우애가 더욱 두터워 먹을 때는 밥상을 함께 하고 배울때는 연상을 같이하여 물건과 나의 사이가 없었으며, 서로 흙장고와 피리를 불고 밤 새벽 문안한 틈에 사간시를 외우리, 성대한 화기가 집안에 넘쳐 흘렀다. 본시 이 남묘의 집으로 간간히 흉년을 만나 상하 의식 및 길 흉사에 쓰일 물자가 혹 결핍될까 두려워 하여 세가지 여가에 글 읽을 계획을 굳게 정하고, 산에 나무하며 밭에 나가 김매기를 힘쓰고 할아버지가 특히 물고기를 좋아함으로 항상 강에나가 잡아다가 봉양하였으며, 제삿날이 추운 겨울이라도 반드시 얼음을 깨고 고기를 구해다가 제수에 쓰니, 마을 사람들이 감탄하기를 옛날 왕상이 이제 다시 있다하였다. 갑술(甲戌)년 九月 二十八日에 문득 아우가 죽으니, 시신을 어루만지며 슬피울고 말하기를 중중 시하에 이 무슨 참변인고 가운인가 명한인가 멀고먼 푸른 하늘은 어찌 그 두텁게 내리고 빨리 빼앗아가 우리 집으로 하여금 막막하게 하는가, 우리 아우 어질고 사랑한 덕으로서 이에 이르니, 하늘을 헤아릴 수 없으며, 이에 빼어나고 결실 못한 것은 정히 이를 이름이로다. 중당 및 양친을 위로 하고자 강연히 식음을 더하고 죽음을 보낸 모든 절차를 조금도 어김이 없이하며, 외로운 족하 남매를 기출갗이 어루만저 길러 옳은 길로 교도하였다. 활반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주벽을 일으켜 무덤에 가서 흐느끼곤 하더니, 원통한 것이 병이되어 여러해를 고생하니 불초가 정성이 부족하고 백약이 무효하니 창황망조 할 뿐이다. 정해(丁亥)년 五月에 증세가 마침내 더 침중하여 十二일 밤중에 베개에 의지하여 허희탄식하고 내가 더 지탱할 수 없구나 불초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두 어버이를 능히 종양치 못하고 너의 부자가 능히 성립치 못하였는데, 이제 문득 이 지경이 되었으니, 명이라 어쩔수 없구나, 내 비록 죽는다만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섬기며, 능히 성효를 다하고 산업 또한 근검 주성하여 이 임종에 끼친 경계를 저버리지 아니하면 지하에서 눈을 장차 감으리라, 또 종형제 및 여러 족하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제 요사(夭死)를 면하지 못하되 아들과 손자가 있어 별로 섭섭할 것이 없으나 그 불효 불자를 어찌 할까? 눈물이 말을 따라 떨어지드니 문득 운명하니, 十三日 사시요, 향년이 事十七세였다. 원근 사람들은 그 수가 덕을 따르지 못함을 통석하였다. 변상을 면하지 못함으로 바로 주앙면 금곡 백호등 선영하 미좌원에 장사하니, 불초의 가이없는 통한이 되었다. 유인은 해평윤씨(海平尹氏) 치진(致珍)의 녀로 동강 은필의 후요, 비는 함양박씨(咸陽朴氏) 춘현(春鉉) 녀로 고종(高宗) 경자(一九○○)년 六月 十日에 출생하였는데 단정하고 씩씩하며, 곧고 맑은 성품을 가진 부인은 부군을 여윈후에 미망인으로 자처하여 소의 소식하고 제사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여 받들며, 자식을 반드시 엄하게 가르쳐 능히 우리집을 창성한 덕행이 옛적 효열부에 내리지 아니하였다. 아들은 양훈(亮勳)·태훈(泰勳)·상훈(商勳)·동훈(洞勳)이요, 딸은 제주(濟州) 양동춘(梁東椿), 광산(光山) 김희수(金熙洙) 처며, 손자 성익(成翼)·순익(珣翼)·익중(翼中)은 양훈 소생이요, 광익(光翼)은 태훈 출이고 나머지는 어려서 다 기록 아니한다. 아! 부군은 십실의 충신이요, 한 고을의 군자다. 집에 있어서는 효우를 두텁게 하고 고을에 처하여는 윤강을 붓잡아 관혼은 예를 따르고 상제는 정성을 다하며, 믿음으로서 벗을 사귀고 사랑으로서 물건을 대하며, 선덕을 이으고 후승을 열서서 가성을 떨쳤으니 가히 향속의 규범을 바로 잡았다 할 수 있겠다. 어찌 나이가 덕을 따르지 못한다 하겠는가마는 덕이 세상을 돕지 못하고, 마침내 초야에서 죽고 말 것인가 통박한 사정이 천지에 무궁하다. 불초가 사사히 세상 속 말에 이와 같은 실덕 무행이 민몰한 것을 보았는 고로 삼가 뜰을 지나면서 보고 들은 일을 기술하오니, 엎드려 생각하건데 입언 군자는 가려서 발휘하기를 천만 피눈물을 흘리며 바라나이다. 불초고(不肖孤) 양훈(亮勳) 읍혈 근장(泣血謹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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